중국 역사에서 가장 신비롭고도 상징적인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전국 옥새(傳國玉璽)입니다. 황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이 옥새는 단순한 보물이 아니라, 천명(天命)을 이어받았다는 증표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와 행방은 여전히 논란 속에 있으며, 수많은 영웅과 패자들의 손을 거쳐 역사의 무대 위에서 흥망성쇠를 함께 했습니다.
기원과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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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석 |
재상 이사(李斯)가 “受命於天, 旣壽永昌(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번영하리라)”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고, 이는 황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문구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한나라 황제들이 이를 계승하면서 황제 권위의 핵심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초한지와 옥새의 쟁탈
진나라 멸망 후, 옥새는 진왕 자영이 함양을 함락한 유방에게 바치며 한나라 황실로 넘어갔습니다.
전한 말기에는 왕망이 옥새를 빼앗으려 했으나, 태황태후 왕정군이 이를 거부하며 옥새를 내던져 손잡이가 깨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금으로 보수한 흔적이 진품의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후한 말기에는 동탁 → 손견 → 손책 → 원술 → 조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옥새가 권력 투쟁의 핵심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원술의 비극적 선택
손견이 옥새를 얻은 뒤 아들 손책에게 잠시 맡겼다가 원술에게 넘겼습니다.
원술은 옥새를 손에 넣자마자 황제로 즉위했지만, 실제 세력 기반이 약했기에 주변 세력들의 반격을 받아 결국 몰락했습니다.
이 사건은 옥새가 아무리 상징성이 크더라도, 실질적인 군사력과 정치력 없이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당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소실
이후 옥새는 당나라 황제들에게 넘어가며 약 300년 동안 안정적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송나라 초반에도 기록이 남아 있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파괴되었거나 분실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청 시대에는 옥새의 존재가 전설처럼 회자되었으나, 실물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일화들
진시황이 동정호에서 유람하다 풍랑을 만나 옥새를 호수에 던졌더니 물결이 잠잠해졌다는 전설.
옥새가 깨진 뒤 금으로 보수된 흔적이 훗날 진품을 구분하는 증거가 되었다는 이야기.
한문 고서에서는 옥새와 참사검(斬蛇劍)을 함께 묶어 “검새(劍璽)”라 부르며 황제 권위를 상징하는 관용어로 사용했다는 기록.
옥새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천명과 정통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옥새를 가진 자가 반드시 승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술처럼 옥새에 취해 현실을 무시한 자는 몰락했고, 반대로 옥새 없이도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자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옥새는 권력의 상징일 뿐, 실질적인 힘과 민심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중국 전국 옥새의 역사는 단순한 보물 이야기라기보다, 권력과 정통성,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힌 드라마입니다.
기원전 200년부터 송나라까지 약 1200년 동안 이어진 옥새의 전승은, 중국 역사 속에서 권력의 본질을 되묻는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결국 옥새는 사라졌지만, 그 상징성은 오늘날까지도 “권력은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사를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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