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최근 몇 년간 반복되던 “선수단은 좋은데 팀이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선택한 이름은 바로 사비 알론소였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순한 감독 선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첼시는 알론소를 일반적인 헤드 코치 개념이 아니라 사실상 “매니저”에 가까운 형태로 임명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감독이라 불려도 실제 권한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전술과 훈련은 담당하지만 선수 영입, 팀 운영 방향, 라커룸 통제 구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례가 흔하다. 반면 매니저는 팀 운영 전반에 자신의 철학을 반영할 수 있다.
과거 퍼거슨 시절의 맨유가 대표적이었고, 현재는 과르디올라의 맨시티가 비슷한 구조를 가진 팀으로 평가된다. 첼시는 오랫동안 선수들의 영향력이 강한 클럽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몇 시즌 동안 그 구조가 경기력 문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엔조 마레스카 시절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클럽 월드컵과 컨퍼런스리그 우승까지 경험하며 완전히 실패한 감독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선수단과의 공개적인 충돌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감독의 카리스마와 권위가 충분했는가”라는 의문은 계속 따라다녔다. 이후 부임한 로세니어 체제에서는 그 문제가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세니어 감독 시절에는 선수들이 감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했고, 실제 경기에서도 팀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약했다. 전술 완성도 이전에 라커룸 장악 자체가 흔들렸다는 해석이 많았다. 결국 첼시는 “좋은 전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술가이면서도 강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를 택했다.
알론소는 감독 커리어 초반부터 매우 특별한 평가를 받아왔다. 레버쿠젠에서 보여준 축구는 단순히 결과만 좋은 팀이 아니었다. 변형 쓰리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포백 전환이 자연스럽고, 빌드업과 압박 구조가 정교했다. 무엇보다 당시 절대 강자였던 바이에른 뮌헨을 무너뜨리며 분데스리가, 포칼컵, 슈퍼컵까지 들어올렸다는 점이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
전술적으로만 보면 현대 축구 감독들 중에서도 최상위권 재능이라는 의견이 많다. 공격 전개는 유기적이고, 수비 전환 속도 역시 뛰어나다. 경기 중 시스템 변화 능력도 탁월하다. 쓰리백 기반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포백 운영 능력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레버쿠젠 이후 향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들이 모인 팀에서 알론소는 예상보다 어려움을 겪었다. 전술 능력 자체는 인정받았지만, 선수단 장악에서는 완벽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처럼 선수 개개인의 영향력이 강한 클럽에서는 감독의 카리스마와 내부 정치력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첼시가 바로 그 중간 지점에 있는 클럽이라는 것이다. 레버쿠젠처럼 완전히 통제 가능한 팀도 아니고, 레알 마드리드처럼 슈퍼스타 중심 구조도 아니다. 대신 재능 넘치는 젊은 선수들이 많고, 동시에 선수단 영향력도 상당하다. 결국 이번 첼시에서 알론소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전술”보다 “장악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첼시가 이번에 감독에게 더 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단순히 훈련만 담당하는 코치형 감독으로는 현재 선수단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단 운영과 선수 영입 과정에서도 감독의 목소리를 강화해 라커룸 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의도가 읽힌다.
한편 알론소의 차기 행선지로는 원래 리버풀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선수 시절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리버풀 팬들과의 상징성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버풀이 슬롯 감독과 재계약 방향을 잡으면서 알론소의 선택지는 달라졌고, 결국 첼시 프로젝트가 새로운 무대가 됐다.
아직 44세라는 젊은 나이도 흥미롭다. 현대 축구는 전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시대이고, 알론소는 그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감독 중 하나다. 다만 첼시는 단순히 전술 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팀이 아니다. 선수단 분위기, 스타성, 내부 권력 구조까지 모두 다뤄야 하는 복잡한 클럽이다.
그래서 이번 도전은 단순히 “알론소가 좋은 감독인가”를 넘어선다. 그는 이제 첼시에서 처음으로 진짜 매니저형 지도자로 시험대에 오른다. 레버쿠젠에서 보여준 완벽한 축구를 재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 시절처럼 스타 선수단 관리 문제에 다시 흔들릴지, 새 시즌 첼시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